고성 옥천사 청동향로 > 성보박물관


신라 천년고찰 옥천사

모든 중생을 부처님으로 공경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연화산 옥천사
성보박물관
성보박물관

고성 옥천사 청동향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원명 작성일70-01-01 09:00 조회4,298회 댓글0건

본문

고성 옥천사 청동은입사 향로는 옥천사의 불교공예를 설명할 때 매우 중요한 유물입니다.

고성 옥천사 청동향로

* 명칭: 고성 옥천사 청동향로(固城 玉泉寺 靑銅香爐)
* 소장: 고성 옥천사
* 지정: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 1972년 2월 12일
* 시대: 고려 후기~조선 전기
* 크기: 높이 23cm, 외구경 27.8cm, 내구경 17.2cm 
* 재질·기법: 청동, 은입사(銀入絲)

1. 가장 특징적인 부분 — 봉황문과 은입사

향로 몸체에는 네 곳에 **꽃무늬 원권(花文圓圈)**을 만들고, 그 안에 **봉황문(鳳凰文)**을 새겼습니다. 봉황문 주변의 빈 공간에는 은을 촘촘하게 입사하여 장식했습니다. 

즉,

청동 바탕 → 문양을 새김 → 은을 끼워 넣음 → 표면을 다듬어 문양을 드러냄

이라는 은입사 기법이 핵심입니다.

이 때문에 단순한 청동 향로가 아니라 고려 말~조선 전기의 금속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2. 명문이 특히 중요합니다

향로의 언저리 안쪽에는

宜寧修道寺

라는 명문이 점선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즉 ‘의령 수도사’라는 사찰명이 확인됩니다. 

또한 받침대 다리 부분에는 다음 명문이 있습니다.

嘉慶二十一年丙子四月
晉州玉泉寺施主沾油契化主普沾呂性

이를 풀면 대략,

가경 21년 병자년 4월, 진주 옥천사 시주 첨유계, 화주 보첨·여성

이라는 내용입니다.

嘉慶二十一年은 **1816년(순조 16)**입니다. 

3. 재미있는 점 — 향로 전체가 한 시대의 작품은 아닐 가능성

여기가 이 유물의 학술적으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연구자료에서는 향로 몸체와 받침대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 몸체: 고려 후기~조선 전기의 은입사 향로
* 받침대: 1816년 명문이 있어 후대에 보수·교체된 것으로 추정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받침대가 몸체와 형태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고 은입사 장식도 없다는 점을 들어 조선 말기에 보수된 부분으로 추정합니다. 

따라서 전시 설명에서는 “1816년에 제작된 향로”라고 단순하게 표현하기보다,

“고려 후기~조선 전기의 청동 은입사 향로로, 받침대에는 1816년의 보수·시주 관련 명문이 남아 있다.”

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4. 옥천사와 수도사의 관계

「宜寧修道寺」 명문과 「晉州玉泉寺」 명문이 함께 있다는 점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즉 이 향로는 한때 의령 수도사와 관련된 물건이었다가 옥천사로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다만 현재 확인되는 자료만으로 어떤 경위로 수도사에서 옥천사로 옮겨졌는지를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고성 옥천사 청동향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은입사 향로이다. 몸체 네 곳에 꽃무늬 원권을 만들고 그 안에 봉황을 새겼으며, 주변을 은입사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안쪽에는 ‘宜寧修道寺’라는 명문이 남아 있다. 받침대에는 1816년 진주 옥천사의 시주와 화주를 기록한 명문이 있어, 향로의 전래와 후대 보수의 역사를 보여준다. 

1. 향로 명문 전체

향로 몸체 안쪽에는:

宜寧修道寺

의녕수도사
→ “의령 수도사”

라고 점각 명문이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도 이 판독을 그대로 제시합니다. 

받침대 다리 부분에는 다음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嘉慶二十一年丙子四月
晉州玉泉寺施主沾油契
化主普沾呂性

이를 이어 쓰면:

嘉慶二十一年丙子四月晉州玉泉寺施主沾油契化主普沾呂性

입니다. 

원문

음

뜻

嘉慶

가경

청나라 연호

二十一年

이십일년

21년

丙子

병자

병자년

四月

사월

4월

晉州

진주

진주

玉泉寺

옥천사

옥천사

施主

시주

시주자·시주 조직

沾油契

첨유계

기름을 마련하는 계

化主

화주

불사·시주를 주관한 사람

普沾

보첨

승려 법명

呂性

여성

嘉慶二十一年은 **1816년(순조 16)**입니다. 그리고 그해는 **丙子(병자)**가 맞습니다. 

⸻

3. 「沾油契」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沾油契(첨유계)**는 옥천사에서 등불 등에 사용할 기름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한 사찰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옥천사에는 조선 후기부터 다양한 사찰계가 운영되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1816년에는 불유계(佛油契)**가 있었고, 사찰계는 등촉·향로 봉안 등 사찰의 운영과 신앙활동을 지원했습니다. 

따라서 이 향로 명문의 沾油契는 단순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사찰의 불전 운영을 지원한 계 조직과 관련된 표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沾油契와 佛油契가 동일한 계인지, 또는 명문의 沾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원문 자료와 옥천사 계첩을 함께 대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전시문에서는 단정적으로 동일 조직이라고 쓰기보다 “기름을 마련하기 위한 유계로 추정된다”고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4. 「化主普沾呂性」은 어떻게 볼 것인가

**化主(화주)**는 사찰의 불사나 시주를 권선하고 실제 사업을 진행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化主 普沾 呂性

은

화주 보첨·여성

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즉 1816년 옥천사에서 이루어진 향로 관련 불사 또는 봉안에 보첨과 여성이라는 두 사람이 화주로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두 이름이 모두 승려 법명인지, 한 사람이 속인 시주자인지는 이 명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5. 왜 「宜寧修道寺」가 중요한가

이 향로의 가장 흥미로운 점입니다.

몸체에는

宜寧修道寺

가 있고,

받침대에는

晉州玉泉寺

가 있습니다.

즉 향로 몸체와 받침대에 서로 다른 사찰명이 존재합니다.

게다가 몸체는 고려 말~조선 초의 뛰어난 은입사 작품으로 평가되는 반면, 받침대의 명문은 1816년입니다. 연구기관은 받침대가 몸체와 균형이 맞지 않고 은입사 장식도 없어 후대에 보수·교체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따라서 현재의 향로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고려 말~조선 초 은입사 향로 몸체
↓
후대에 전래·사용
↓
1816년 옥천사에서 받침대를 보수 또는 새로 마련
↓
옥천사 시주·화주 및 沾油契 관련 명문을 새김

핵심 문안

이 향로의 몸체 안쪽에는 ‘宜寧修道寺(의령 수도사)’라는 명문이, 받침대에는 ‘嘉慶二十一年丙子四月晉州玉泉寺施主沾油契化主普沾呂性’이라는 1816년 명문이 남아 있다. 몸체는 고려 말~조선 초의 뛰어난 청동 은입사 작품으로 평가되며, 1816년 옥천사에서 받침대가 보수·교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한 점의 불교공예품을 통해 사찰 간 유물의 전래와 조선 후기 옥천사의 사찰계 활동을 함께 보여준다. 

이 유물은 옥천사 사찰계 연구와 연결해서 전시하면 상당히 좋은 사례입니다. 특히 “향로 → 1816년 沾油契 → 등촉·불사 → 옥천사 사찰계”라는 흐름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성보박물관 목록

Total 90건 3 페이지
게시물 검색

대한불교조계종 옥천사
52904 경남 고성군 개천면 연화산1로 471-9 종무소. 055-672-0100 / 박물관. 055-673-4951 FAX.055-672-0481
템플스테이. 055-672-6296
Copyright ⓒ 옥천사 202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