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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고찰 옥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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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명 작성일70-01-01 09:00 조회3,5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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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옥천사 쇠도장 직인 옥천사인,진주군옥천사주직인,옥천사주 직章(조선후기) 7.5Cm내외


옥천사 인장과 인장함


옥천사에서 전하는 **인장(印章)과 인장함(印章函)**은 불상이나 불화와 같은 예배 대상은 아니지만, 사찰의 행정·문서·공인(公印) 체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옥천사는 조선 후기 상당한 규모의 사찰로 운영되었고, 현재도 많은 고문서가 전해집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승역·지방관청과의 관계, 사찰 운영 등을 보여주는 문서가 다수 남아 있어 인장류를 함께 살펴보면 의미가 큽니다. 


1. 인장(印章)


사찰에서 인장은 문서에 공식적인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옥천사에서는 사찰 명의의 문서, 승려의 임명·증명, 사찰 재산 및 계(契) 관련 문서 등에 인장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사찰의 고문서와 인장을 함께 전시하면 단순한 도장 하나가 아니라,


문서를 만들고 → 인장을 찍고 → 보관하고 → 사찰의 권리와 운영을 증명했던 행정 체계


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2. 인장함(印章函)


인장함은 중요한 인장을 보관하기 위한 작은 함입니다.


따라서 인장과 인장함은 서로 분리해서 보기보다 한 세트의 사찰 행정용품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장함의 형태·재질·문양을 조사하면 옥천사에서 인장을 얼마나 중요하게 관리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3. 옥천사 역사와의 관계


옥천사는 조선 후기 국가와 지방 관청의 각종 역역을 부담했고, 1784년부터 내수사에 소속되어 어람지(御覽紙)를 생산하는 사찰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찰과 국가·지방관청 사이에 문서 행정이 상당히 중요했기 때문에, 인장과 고문서는 옥천사의 사회적·행정적 역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인장과 인장함(印章·印章函)


사찰의 공식 문서에 사용하던 인장과 이를 보관하던 함이다. 인장은 문서의 작성 주체와 진위를 확인하고 사찰의 행정적 권한을 표시하는 중요한 도구였다.


옥천사에는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고문서가 전해지고 있다. 인장과 인장함은 이러한 문서가 작성되고 관리되었던 과정을 보여주며, 옥천사가 단순한 수행 공간을 넘어 승려와 신도, 관청과 지역사회가 연결되는 행정·경제적 공간이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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