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 태산대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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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명 작성일70-01-01 09:00 조회3,3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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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 제7 태산대왕도(第七泰山大王圖)
「제7 태산대왕도」는 1744년(영조 20) 효안(曉岸) 등 13명의 화승이 그린 옥천사 10폭 시왕도 가운데 일곱 번째 작품입니다. 모시에 채색하였으며 크기는 165×117㎝입니다. 현재 「고성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로 함께 보물 제169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 태산대왕은 누구인가
태산대왕(泰山大王)은 일곱 번째 명부의 왕입니다.
『예수시왕생칠경』의 시왕 체계에서는 망자가 죽은 뒤 **49일째, 즉 칠칠일(七七日)**에 태산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따라서 제7 태산대왕도는 49재와 직접 연결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 → 7일 → 14일 → 21일 → 28일 → 35일 → 42일 → 49일
그 마지막 49일째의 심판을 담당하는 왕이 태산대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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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면의 기본 구성
옥천사 시왕도는 거의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단
→ 태산대왕과 명부 권속의 재판 장면
중앙
→ 대왕의 옥좌와 책상
하단
→ 죄인의 지옥 형벌
옥천사 작품에서는 특히 대왕 뒤의 커다란 등받이와 구름이 상단의 재판 장면과 하단의 지옥 장면을 시각적으로 분리합니다. 이 형식은 옥천사 시왕도의 중요한 특징이며, 현존 작품 가운데 매우 이른 사례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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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앙의 태산대왕
화면 중심에는 왕의 모습으로 표현된 태산대왕이 앉아 있습니다.
시왕도에서 제10 오도전륜대왕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왕은 관을 쓰고 홀이나 붓을 든 왕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앞에는 책상이 놓입니다.
따라서 태산대왕 역시
* 왕관을 쓴 모습
* 관복
* 홀 또는 붓
* 왕좌
* 앞쪽의 책상
* 좌우의 판관·녹사·사자
등을 갖춘 명부의 재판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익숙하게 보았던 관청의 재판 장면을 저승 세계에 옮겨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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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태산대왕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 톱으로 써는 지옥
제7 태산대왕도의 가장 특징적인 도상은 화면 아래쪽의 형벌 장면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옥천사 제7 태산대왕도의 하단에
형틀에 죄인을 묶어놓고 톱으로 몸을 써는 형벌
이 묘사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화면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태산대왕의 재판
↓
망자의 죄업 판정
↓
죄업에 따른 지옥행
↓
형틀에 묶임
↓
톱으로 몸을 베는 형벌
이라는 인과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하단의 지옥 장면은 단순한 공포 장면이 아니라 업에 따른 과보를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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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왜 49일째에 태산대왕을 만나는가?
이 부분은 옥천사 시왕도를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합니다.
시왕신앙에서는 죽은 뒤 매 7일마다 명부의 왕에게 심판을 받습니다.
이 체계는 『예수시왕생칠경』에 근거한 명부신앙의 전통입니다.
따라서 칠칠재·49재의 마지막 심판과 태산대왕은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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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태산대왕의 특별한 의미
태산대왕은 단순히 ‘일곱 번째 왕’이라는 의미만 갖지는 않습니다.
49일은 한국 불교의 천도 의례에서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시왕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49일 동안 망자는 여러 명부의 왕 앞에서 자신의 업을 심판받습니다. 그래서 유족들은 이 기간 동안
* 독경
* 염불
* 재공양
* 보시
* 불사
* 추선공덕
등을 행하여 그 공덕을 망자에게 회향합니다.
따라서 옥천사 제7 태산대왕도는 49재라는 한국 불교의 장례·천도문화와 직접 연결되는 시각 자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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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화면에서 읽어야 할 인물들
태산대왕 주변의 권속은 명부의 재판을 하나의 관청처럼 보이게 합니다.
① 태산대왕
재판의 중심이 되는 명부의 왕.
② 판관
망자의 죄업을 조사하고 판결을 보좌하는 관리.
③ 녹사
문서와 기록을 담당하는 명부의 관리.
④ 사자
망자를 명부로 인도하는 존재.
⑤ 귀졸
지옥의 형벌을 집행하는 존재.
⑥ 망자
재판의 대상이 되는 죽은 사람.
시왕도 전체가 이러한 왕–관리–사자–귀졸–망자의 행정적·사법적 구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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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옥천사 시왕도 전체에서 제7폭의 위치
옥천사 시왕도는 원래 10폭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특히 명부전에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봉안할 때 홀수 왕과 짝수 왕이 좌우에 나뉘는 형식입니다.
한쪽
* 제1 진광대왕
* 제3 송제대왕
* 제5 염라대왕
* 제7 태산대왕
* 제9 도시대왕
반대쪽
* 제2 초강대왕
* 제4 오관대왕
* 제6 변성대왕
* 제8 평등대왕
* 제10 오도전륜대왕
이라는 배열을 갖습니다.
따라서 제7 태산대왕도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한 명부전 공간에서 홀수 번째 시왕의 한 축을 이루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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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패널용 해설문
제7 태산대왕도
1744년 | 효안(曉岸) 등 | 모시에 채색 | 165×117㎝
태산대왕은 망자가 죽은 뒤 49일째, 곧 칠칠일에 만나는 일곱 번째 명부의 왕이다. 화면 중앙에는 태산대왕이 왕좌에 앉아 망자의 죄업을 심판하고, 좌우에는 판관·녹사·사자 등이 시립해 있다. 화면 아래에는 죄인을 형틀에 묶고 톱으로 몸을 베는 지옥의 형벌이 묘사되어 있다. 49일 동안 이어지는 심판과 그에 따른 업의 과보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49재의 불교적 의미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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